천렵 
천렵 
  • 박영철 기자
  • 승인 2022.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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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영철 대표
사진=박영철 기자

여름이 오고 방학이 시작되면 논에는 벼가 파랗게 자라고 들에는 고추, 옥수수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논두렁에는 콩과 풀이 무성했다. 김을 매고 피를 뽑고 논두렁 풀을 깎느라 어른들은 들에서 살다시피 했다. 날이 가물 때는 *물꼬싸움으로 이웃끼리 머리끄덩이를 잡는 일도 많았다.

마을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나 강이 있기에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멱을 감았다. 아이들은 개헤엄이나 개구리헤엄이기는 해도 수영솜씨가 제법이었다. 100m가 넘는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송장헤엄은 묘기에 속했고, 잠수해서 오래 버티기, 급류 건너기는 아찔한 경험을 하는 모험이었다. 그런데 *도깨비둠벙이나 넓은 들의 어디쯤에서는 꼭 헤엄 잘 치는 대학생 형이나 친구 중에 한두명씩 물귀신에게 잡아먹히곤 했다.

천렵은 여름철의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어른들은 복중에는 하루쯤 농사일을 작파하고 술추렴을 해 강으로 나갔다. 솥을 들고 고추장과 된장, 수저만 챙기면 준비는 끝났다. 나머지는 들과 물에서 다 해결이 됐다. 아이들은 멱을 감다가 바로 천렵에 나섰다. 은모래가 펼쳐진 냇물이나 강에는 물고기들이 차고 넘쳤다. 붕어, 빠가사리, 메기, 모래무지, 피라미, 미꾸라지, 새우, 가재, 게 등. 조개와 다슬기도 흔해 빠졌다.

고기 잡는 방법은 다양했다. 어른들은 주로 투망을 이용했다. 그물의 한쪽을 어깨에 걸치고 추가 달린 아랫자락을 가다듬은 뒤 몇번 흔들다가 힘을 조절해가며 물에 던졌다. 둥글게 쫙 펼쳐지는 고도의 솜씨는 아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물고기들이 은빛 비늘을 파닥이며 끌려 올라올 때는 정말 짜릿했다.

아이들은 *어레미나 *반두를 들고 도랑을 뒤졌다. 모기장을 뜯어 만든 그물이나 찌그러진 소쿠리도 훌륭한 어구가 됐다. 도랑에도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 붕어 등 온갖 고기들이 다 있었다. 어레미로 으슥한 구석이나 풀섶을 잽싸게 훑으면 한번에 너더댓마리씩 잡히는 것은 보통이었다. 때로는 메기도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형들이 어레미질을 하면 동생들은 신발과 *종다래끼를 들고 따라다니며 잡은 고기를 받아 담았다. 고기잡이가 너무 재미있다 보니 금세 한나절이 지났다. 독사풀인가 하는 독초를 으깨 물에 풀어 송사리를 잡기도 했지만 워낙 작아서 먹을 수는 없고 재미로 그쳤다.

고등학생쯤 되면 통학용 자전거를 동원했다. 헤드라이트를 켜는 배터리에 전깃줄을 연결하고 대나무에 쇠꼬챙이를 달아 개울로 나갔다. 한 아이가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다른 아이가 물가에서 큰 돌밑을 쑤시면 감전된 피라미와 미꾸라지들이 허옇게 배를 뒤집고 떠올랐다. 

장마로 홍수가 나면 큰 강에는 지붕이며 돼지, 닭 등 가축이며 큰 나무와 온갖 살림살이들이 성난 듯 내달리는 시뻘건 강물로 떠내려왔다. 홍수로 높아진 물이 빠질 때쯤에는 강둑에서 반두질을 하거나 *주낙을 놨다. 메기와 뱀장어, 가물치는 이때 많이 잡혔다.

밤에는 정미소에서 미리 얻어다 둔 폐유와 솜방망이로 만든 횃불을 들고 물가로 나갔다. 허벅지까지 걷어붙이고 물에 들어가 첨벙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반두질을 해서 메기나 뱀장어를 잡았다. 

이 때는 붕어들이 수초 사이에서 잠을 자는 시간. 톱의 뒷날로 잠자는 붕어를 내리쳐서 반토막내 잡는 잔인한 짓을 하기도 했다. 횃불을 이용, 고기를 잡고나면 그을음 때문에 얼굴이 깜둥이가 됐다. 

달밤에는 아이들이 10여명씩 떼를 지어 어깨동무를 하고 모래사장을 밟고 다녔다. 미끈한 것이 밟히면 옆의 아이가 다리를 잡고 물 속에 들어가 발밑의 모래무지를 잡아올리는 식이었다. 잉어나 은어처럼 큰 고기를 잡는 데 *깡이라는 것을 쓰는 나쁜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고기를 잡는 데는 뭐니뭐니 해도 '막고 품는' 게 최고였다. 가뭄으로 개울의 물이 줄어들면 청년들이 둠벙의 위 아래에 둑을 쌓았다. 물길을 막고 양수기로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물을 퍼내 숨어있던 물고기를 깡그리 잡아올렸다. 저수지의 물을 품기도 했다. 집집마다 고기를 나눠 동네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가재는 골짜기의 차디찬 물에 득시글했다. 맑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돌틈을 뒤졌다. 꼬리를 웅크리며 재빨리 뒷걸음질치는 놈을 덮쳐 잡다보면 반나절 만에 가재가 깡통에 수북이 담겼다. 그 놈을 삭정이 불에 구우면 몸통도, 집게발도 다 빨갛게 익는다.

잡은 고기는 강변 미루나무 그늘에 양은솥을 걸고 즉석에서 매운탕이나 어죽으로 끓였다. 매운탕은 된장이나 고추장 국물에 끓였다. 여기에는 꼭 아무 밭에서나 따오고 캐온 파, 마늘이며 손톱으로 쪼갠 풋고추, 주먹으로 으깬 애호박이 들어가야 제맛이 났다. 아무도 제 밭의 푸성귀쯤 따가는 것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져가라고 거들기 바빴다.

소주는 *막소주가 제격이었다. 정자나무 짙은 그늘에서 부채질을 해가며 시국얘기를 하는 노인들까지 모셔다가 소주 한 잔씩 대접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햇볕 쨍쨍한 여름날. 고향의 개울과 강에서 숱하게 잡아먹은 물고기들. 지금은 고향의 물도 더러워져 미역조차 감을 수 없게 돼버렸다. 투망도 금지됐다. 이래저래 여름 천렵은 요즘의 선풍기나 에어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서늘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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