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여름 야생 먹거리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여름 야생 먹거리
  • 박영철 기자
  • 승인 2022.09.11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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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영철 기자
사진=박영철 기자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면 산과 들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렇다고 그냥 놀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뜯기고 *꼴을 베는 일은 아이들 차지였다. 아이들은 땡볕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를 끌고 나섰다. 

풀이 무성한 개울가나 들판, 야산에 소를 풀어놓으면 알아서 풀을 뜯으며 배를 채웠다. 잠깐 동안의 *낫질로 망태 가득 꼴을 채우고 나면 그야말로 *자연 시간. 다람쥐를 쫓고 풀섶에 낳아 놓은 새알을 털고 거미줄 매미채로 매미를 잡고, 먹을 것이 지천인 산과 들과 개울을 쏘다니며 하루해를 꼴딱 넘겼다.

도시에서조차 귀했던 과자 사탕 따위는 구경하기도 힘들었지만 심심풀이로 먹을 수 있는 풀과 열매와 생물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름의 먹거리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뽕나무에 열리는 오디와 가시덤불 속에 숨어있는 산딸기다. 그 시절에는 양잠을 하던 집들이 많아 산자락이나 밭 가에는 뽕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파랗던 오디는 차츰 붉어져 다 익으면 검정색으로 변한다.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먹고 나면 입술은 온통 잉크색깔이 된다. 

손이며 옷에까지 오디물이 든다. 오디를 따먹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치는 아이도 있었다. 산의 언덕빼기나 길가에는 산딸기가 많았다. 붉은 산딸기를 따다가 잔 가시에 손등이나 팔을 할퀴는 일도 많았다. 

할머니들은 밭을 매다가 틈틈이 밭두렁의 산딸기를 따서 망태 한쪽에 담아와 손주들에게 먹이곤 했다. 뱀딸기는 산딸기와는 또 다른 야생딸기다. 잡초 속에 섞여 빨갛게 익는 뱀딸기는 심심풀이로 먹기는 했지만 맛은 별로였던 것 같다.

버찌인 벚나무 열매를 우리는 '뻣'이라고 불렀다. 요즘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의 버찌보다는 산에서 자라는 개벚나무 버찌가 더 크고 맛도 훨씬 달콤했다. 버찌 역시 먹고 나면 입술이 까매졌다. 어릴 때 배가 고파 도시락 가득 버찌를 따 담아 씨도 뱉지 않고 먹은 뒤 토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버찌가 뱃속에서 발효돼 술마신 것처럼 취해버렸기 때문이다. 동네의 형과 누나들은 주전자와 양동이를 들고 뒷골, 구절골 등으로 이름붙은 깊은 산골짜기로 버찌를 따러 다녔다. 이렇게 따온 버찌를 장에 내다팔아 돈을 마련했다. 지금도 여름철 거리에서 함지박에 담아 파는 버찌를 보면 동네 형들을 따라 험한 산을 누볐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들판에서는 찔레꽃이 지고 난 찔레나무에 새순이 살지게 솟아올랐다. 가시를 피해 조심스럽게 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 먹었다. 찔레순은 연하고 달큼하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았다. 몇년 전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유명해진 싱아는 연할 때 줄기며 잎을 따먹는다. 지금도 싱아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이 시었다.

'개금'이라고도 불렀던 개암은 가을 열매지만 늦여름부터 알이 찼다. 그러나 파란 잎에 싸여있어 앞니로 깨물어봐야 익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름에는 설익은 열매를 깨물다 뱉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얗게 여문 개암은 껍데기를 깨면 은행알처럼 생긴 속살이 튀어나온다.

 개암은 맛이 고소했다. 개암을 딸 때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쐐기였다. 개암나무 잎사귀 뒤편에 숨어있다가 적이 침입하면 독하게 쏘았다. 시골 아이들은 쐐기에 쏘여 살이 부르트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기어코 개암을 따내 한주먹씩 지니고 다녔다. 

개복숭아라고도 하는 산복숭아는 늦여름 가지가 휘어질 만큼 많이 달렸다. 보통 복숭아보다 알이 작고 늦게 익는데 설익은 산복숭아를 따먹었다가 배탈이 나곤 했다. 노란색으로 익은 산복숭아는 과수원 복숭아보다 달고 맛있었다.

개구리와 뱀을 잡아먹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개구리는 너무나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아 개울가 같은 데서 나무를 꺾어다 불을 놓고 뒷다리를 구워먹었다. 뱀은 아무나 잡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독사에게 물리면 위험하기 때문에 솜씨가 필요했다. 마을마다 또래들 사이에 *땅꾼 소질이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린 땅꾼들은 뱀을 발견하면 재빨리 나무를 꺾어 *작대기 모양을 만들었다. 한 순간에 V자형 나무 사이에 뱀의 머리를 집어넣어 눌러 잡았다. 목 둘레의 살을 찢어 껍질과 내장을 훑어내린 뒤 살을 불에 올려 구워먹었다. 가끔 맨손으로 뱀을 잡아 껍질을 벗기는 아이도 있었다.

야생의 먹거리들은 여름보다는 가을에 훨씬 푸짐했다. 특히 머루.다래.으름은 산중의 별미였다. 우리나라 산치고 머루.다래가 없는 곳은 없었다. 분이 뽀얗게 묻은 머루, 꼭지가 빠질 정도로 잘 익은 다래는 맛이 기가 막혔다. 

으름은 익으면 겉거죽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까만 씨들을 잔뜩 품고 있는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으름이 주렁주렁 매달린 덩굴을 찾으면 보물을 찾은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이밖에도 이른 봄의 칡뿌리부터 초여름의 감꽃과 물앵두, 가을의 고욤.아그배.까마종이.메뚜기.방아깨비, 겨울의 참새.산토끼.꿩 등 지금 생각하면 안 먹는 것이 없고 못먹는 것이 없었다.

 가을의 토종과실과 사냥에 가까웠던 겨울 먹거리들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참이다. 우리들은 아무 것이나 마구 먹어도 병없이 탈없이 뛰놀면서 자연의 가슴 속에서 자라났다. 그때 우리가 따먹고 잡아먹은 숱한 열매와 뿌리, 생물들. 아이들이 그냥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몸을 섞고 살았던 산과 들은 언제나 무궁무진한 먹거리를 내주는 하나의 커다란 보물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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