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추억의 맛 ‘갱시기’를 아십니까?
[음식 이야기] 추억의 맛 ‘갱시기’를 아십니까?
  • 박영철 기자
  • 승인 2020.06.12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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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나물로 만든 국에 밥을 넣어 끓인 향토 음식인 갱시기는 예로부터 가난한 시절에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돕는 구황 음식(救荒飮食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굶주림을 면하도록 주는 곡식)으로 경상도 김천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젠 별미가 되어버린 갱시기 만드는 방법은 멸치와 다시마 우려 낸 국물에 콩나물을 넣고 센 불에서 뚜껑을 덮고 끓인다. 송송 썬 김치와 고구마를 냄비에 넣고 적당히 익으면 찬밥을 넣어 퍼질 때까지 뭉근한 불에서 끓인다.

그리고 실파를 어슷하게 썰어 넣고 소금,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먹다 남은 찬밥을 이용할 때 밥을 너무 많이 넣으면 끓은 다음 밥이 불어서 국물이 없어지므로 밥은 적게 넣고 국물이 있게 한다. 반찬은 따로 필요 없다. 다만 동치미 국물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 방법은 사치다. 추운 겨울날 연탄불에 밥을 넣고 끓여먹은 콩나물 김치국밥인 갱시기는 정말 가난한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이다.

반드시 식은 밥이라야 하고 또 반드시 푹 삭아서 신 김치와 남은 반찬이라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갱시기의 제 맛이 나지 않았다. 멸치와 다시마 우려 낸 국물은 안감생심(安敢生心). 당시에는 꿈도 못 꾸었다.

갱시기의 어원은 갱은 제상에 올라오는 갱(羹)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음식 전문가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갱시기는 갱식에서 나온 말이며 갱죽이라고도 한다. 제상에 올리는 무 같은 채소와 고기를 넣어 오래 끓인 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명칭에 대해서는 지방에 따라 밥국, 국시기로도 불렸다.

이런 갱시기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이 매우 즐겼다고 한다. 물론 고향이 그쪽이라 그랬겠지만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즐겨먹던 음식이었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 청와대 요리사에게 특별히 주문. 즐겼다고 하는데, 입맛이 없어지면 반드시 이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신 그 다음날 해장으로 즐겼고 술 마실 때는 술국으로도 먹었다.

갱시기 맛의 원천은 ‘묵은지’다. 김치찌개처럼 겉절이 김치로는 맛이 안 난다. 김장 김치가 푹 삭아 시큼한 맛이 절정을 이룰 때 갱시기 맛도 절정을 이룬다. 썬 가래떡, 거기에 콩나물, 멸치 육수 등이 섞이면 진미가 나온다.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 갱시기는 70년대 이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식구들의 끼니를 때울 때 흔히 해먹었던 음식이다.

당시 식구는 많고 양식은 부족했다. 그래서 양식을 조금이나마 절약하기 위해 남은 밥이나 곡식 등에 김치나 콩나물 등 기타 채소류를 듬뿍 넣고 물을 많이 부어 멀겋게 끓여서 먹었다.

그리고 갱시기는 따듯할 때 먹어야 한다. 식으면 퍼져버려서 모양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 그래서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식당에서 팔기에 그렇고 그렇다. 또한 갱시기는 노태우 대통령 경우처럼 입맛 없을 때도 좋고 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서 아주 좋다.

 하지만 갱시기가 돼지죽 같아서 젊은 사람들이 은근히 기피했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 옛날 엄마들이 해주는 최고의 야참은 누가 뭐래도 갱시기였다. 그래서 경상도 출신의 어느 어머니는 딸들에게 "나 죽으면 너그들 제사상 차리지 말고 갱시기 한그릇 끓이도"라고 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요즘 젊은 사람들 이런 갱시기를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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